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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59 April 2024

기획특집

◎ 의대 증원이 의학교육에 미칠 영향

권 복 규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정부의 뜻대로라면 의과대학 정원이 현재의 3,058명에서 내년부터 5,058명으로 70% 가까이 갑자기 늘어나게 된다. 이 정책의 합당성이나 절차적 합리성에 관한 분분한 논의는 제쳐두더라도 일단 이러한 정책이 현재의 의학교육에 미칠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의학교육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초의학 교수의 정원은 적정 수에 현저히 미달하고 있으며, 조교 등 지원인력조차 충분히 지원되지 않고 있다. 카데바의 기증은 학교마다 매우 큰 편차를 보이고 있고, 실험실습 시설과 장비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대학 등록금은 십년 이상 동결되어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한 재원은 크게 부족한 상태다. 무엇보다도 임상에서 실습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다. 이는 주로 임상 교수진의 격무에 기인하는데 거의 모든 의대에서 진료와 연구에 치어 제대로 된 학생 교육을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환자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학생이 직접 진료에 참여하거나 관찰하는 데 대한 거부감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는 단시일 내에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이렇듯 현재의 의학교육에도 많은 문제가 있으며 엄청난 예산 지원이 있다고 해서 쉽게 풀 수도 없다. 즉 카데바의 수급과 같은 문제는 단지 예산만 가지고 가능한 것이 아니며, 기초의학 교수의 양성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의대 졸업자들이 그 교수직을 원할 만큼 매력적인 처우가 보장되어야 하고, 교육 가능한 임상 환경은 전체 의료 시스템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2천 명을 당장 증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학교에 따라서는 정원이 49명에서 200명으로 무려 4배 이상 증가하는 곳도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 적시에 예산 지원을 한다면 아마 강의실과 실습실 공간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실험실습 장비도 구매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운용할 인력은 하루아침에 구할 수 없다. 교육에는 교수뿐 아니라 각종 해부기사 등 보조인력이 필요하고, 시뮬레이션센터와 같은 실습 시설을 운영하려면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교육의 하드웨어적인 측면은 가장 쉽게 보완이 가능하다. 강의실이나 실험실습 장비와 달리 인력은 교육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며, 한번 채용하면 쉽게 해고하기도 어렵다. 즉 그들의 인건비는 고스란히 학교의 교육 예산에 전가되며 만약 정원이 줄어들기라도 하면 이는 학교에 부담으로 남는다. 어찌어찌 인력을 채용하여 훈련한다 해도 이들이 실제 상황에서 교육에 투입되어 교육 효과를 내는 데는 경험과 시간을 통한 조정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혼선은 고스란히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교육이란 초기 투자 비용뿐 아니라 유지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정원 증가로 인한 실험실습 장비들은 유지관리와 교체가 필요하며 그 예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의과대학의 등록금은 이러한 예산을 마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번 증원을 통해 초기에는 정부가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그 예산의 지원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증원을 환호한 대학본부들은 빠듯한 학교 운영 예산에서 의대를 언제까지 지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의과대학의 등록금을 지금보다 훨씬 올릴 수는 있을 것인가?

보다 더 큰 문제는 임상실습이다. 예컨대 정원이 200명으로 편제된 의대에서 본과 3학년과 4학년이 실습을 나간다고 하면 실습 병원은 최소 40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 400명의 수용을 위해서는 병원 규모가 최소 1천 병상은 훌쩍 넘어야 할 것이며, 임상 교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야 할 것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우리 지역에도 드디어 상급 종합병원이 생겼다고 환영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1천 병상의 상급 종합병원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후 인구가 1백만 명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구 1백만 명 이상이 되는 지방자치단체가 몇이나 되는가? 그리고 그 지역 인구 모두가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그 병원에만 온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이 교육병원의 유지를 위해 경증 환자를 놓고 지역의 1차, 2차 의료기관과 경쟁해야 한다면 이는 해당 지역 의료 생태계가 초토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그 병원은 만성 적자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또 그 정도의 상급 종합병원의 교수들은 해당 분야의 세부 전문가일텐데 그만큼의 환자 풀을 유지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본인의 전문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고 현재의 병원 규모에서 4배가 더 늘어난 학생을 실습해야 한다면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 것인가? 혹자는 지역의 경우 의료원이나 보건소 등으로 지역밀착형 실습을 내보내면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해당 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들을 모두 어떤 형태든 “교원”으로 임용해야 한다는 행정적인 어려움에 덧붙여 임상실습이나 교육은 의사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라 별도의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시간적/금전적 보상을 누가 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열악한 현재의 교육 환경에도 불구하고 배출되는 의사들의 질이 그럭저럭 유지되어 온 것은 우선 의학에 입문하는 자원의 질이 매우 우수하였고, 이 학생들은 수동적 학습자가 아니라 의과대학이라는 학습 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고 의학을 습득하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자율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각종 스터디그룹 등을 만들어 필요한 학습을 했고 동아리와 학년 선후배 관계로 이어지는 질서 속에서 선배가 후배를 교육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문화가 그동안 정착해서 유지되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정원의 몇 배를 늘리는 것은 이러한 학습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시킨다. 각자에게서 동질감을 확인하고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발달-physician identity formation-하는 일은 이러한 급조된 환경 속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상은 모두 기본의학교육(Basic Medical Education, BME)에 관한 것이다. 전공 수련이라는 졸업후 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 GME)로 넘어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주지하듯 현재의 전공의 TO는 수련기관의 교육/수련 역량이나 수련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전공의를 피교육자가 아닌 저렴한 인력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해 5천 명의 신규 전공의가 매년 배출된다면 이들은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을 수 있을까? 이들에게 누가, 어디서, 어떤 수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공공의료시스템을 채택한 몇몇 나라들에서처럼 1~2년간의 기본임상수련을 받게 한 다음 일반의로 일하게 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전문의 수련은 참으로 어려워질 것이 명약관화하며, 그렇게 “전문의”가 배출된다 한들 그들의 역량은 의문에 부쳐지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의과대학의 증원이 필요하다 해도 그것은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신중히 살펴본 다음 여러 각도에서 시뮬레이션해 보고 현재의 의료와 교육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국한되어야 한다. 의학교육은 단지 의과대학만의 문제만이 아니며, 전체 의료시스템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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