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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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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두종 (1896 ~ 1988) 한국의학사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한 의사학자. (헌정일 : 2010-03-29)

공적사항

김두종 교수는 우리나라의 광복과 더불어 그 이 후와 1950년대에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아무 매력이 없는 기초의학 중의 기초의학인 의사학(醫史學)을 연구하여 한국의학사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의 “한국의학사”는 1960년대 한국학 분야의 대표적인 성과물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타계하는 시점까지 학문에 정진한 선생의 태도는 분야를 초월하여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두종 교수는 189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서당에 다니며 四書와 詩經을 배웠고,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 올라와 휘문의숙을 거쳐 1918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한 이듬해인 1919년 선생은 삼일운동에 참가하였고, 이것 때문에 1학년을 마치고 경의전에서 퇴학당하였다. 김두종 교수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교토부립의과대학에 다시 입학하여 1924년에 학업을 마쳤다.

졸업 후 김두종 교수는 중국으로 가서 만주의과대학 부속병원, 하얼빈병원 등에서 임상 수련을 마치고 하얼빈에서 제세의원을 열어 약 7년간 개원의 생활을 하였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김두종 교수는 자신의 여생을 동양의학사 연구에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고, 1938년 봉천에 있는 만주의과대학 동아의학연구소에서 연구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때 선생의 나이는 43세였다. 이 연구소에서 김두종 교수는 동양의학사의 연구와 함께 중국의 한의서를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중국의 고의서(古醫書)를 수집하면서 중국고판본을 감식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기 위해 중국의 서지학에 관한 공부를 하였으며, 이것이 바탕이 되어 우리나라의 고서에 대한 서지학 연구에도 일가를 이를 수 있었다.

김두종 교수의 의학사 연구는 그 내용에 따라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시기는 만주의과대학 동아의학연구소에서의 시기로 이때에는 당시 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던 방대한 한의서들을 활용하여 한의학 이론의 발전과정을 서양의학적 시각에서 검토하는 작업을 하였던 시기였고, 두 번째 시기는 귀국 후 한국의학사 연구에 매진한 시기였다.

1946년 김두종 교수는 귀국하여 몇몇 의과대학에서 의학사 강의를 시작하였고, 1947년 4월 30일에는 윤일선 선생과 김두종 선생이 주축이 되어 대한의사학회를 창립하였다. 선생은 의학사뿐 아니라 과학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960년 과학사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1947년 10월 김두종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임명되어 새로 창설된 의사학교실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일본의 의과대학에도 의사학교실이 없을 때였다. 한국전쟁 중에는 전시연합대학으로 서울대학교 서울분교장에 임명되어 전쟁 중의 학교를 돌보기도 하였다. 휴전 다음해인 1954년 김두종 교수는 그 동안의 한국의학사 연구성과를 모아 고려시대까지에 해당하는 “韓國醫學史 上中世編”을 출간하였다.

1950년대는 사회적으로 우리나라 전체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건을 위해 노력하던 어려운 시기였으나 김두종 교수에게 있어서는 이 시기가 학문적인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김두종 교수 개인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1990년대에 의사학회의 재건과 더불어 의사학 연구가 활발했던 시기였다. 특히 1958년에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대표적 의사학 학술지 “Bulletin of the History of Medicine\"(vol 32, No.3)에 ”Transmission of Korean Medicine to Japan during the Age of the Three Kingdoms\"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 김두종 교수는 사회적으로 여러 비중 있는 직책을 맡았다. 숙명여대 총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대한의학협회 회장, 성균관대학 이사장 등의 직책을 역임하면서도 평생의 업적인 “한국의학사”의 저술에 진력하여 1966년 드디어 우리나라 전 시기의 의학사를 다룬 “한국의학사”와 그 자료집에 해당하는 “한국의학문화대연표”를 발간하였다. 이때 선생의 나이 71세였다. 또 77세가 되던 1973년에는 ‘韓國古印刷技術史“를 출간하였다. 1979년에는 ”東西醫學史大網“을 펴냈다. 이 외에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집필자로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학문적 정열로 왕성한 저술활동을 펴다가 1988년 5월 18일에 타계하였다.

김두종 교수는 오늘날보다 경제적 사회적 형편이 훨씬 어려웠던 시기에 의학에 뜻을 두고 경의전에 입학했다가 삼일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퇴학당했으나, 불굴의 정신으로 의학의 길을 계속하여, 많은 사람이 외면하던 의사학 분야를 전공하면서 착실한 기초를 쌓고,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의사학의 불모지를 개척하여 평생의 역저인 “한국의학사”를 출간함으로서 한국의학사의 아버지가 되었고, 이 후 타계하기까지 오로지 학자로서의 길을 꿋꿋이 지킨 한국의학의 거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