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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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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윤일선 (1896 ~ 1987) 우리나라 과학계를 태동시킨 학자이며, 한국 최초의 병리학자. (헌정일 : 2009-03-19)

공적사항

윤일선 교수는 독일 비르효의 세포병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현대 병리학의 입장에서 보아 한국 최초의 병리학자다. 그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병리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계를 태동시킨 학자이다.

윤일선교수는 1896년 개화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님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그곳에서 소학교를 다니다가 귀국하여 경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다시 일본으로 가서 제6고등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모교의 병리학교실에 입교하여 독일 비르효의 초기 제자로 일본 병리학을 일으킨 후지나미 교수를 사사했으며, 그의 지도로 한국인으로서는 여섯 번째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6년 귀국 후 그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경성제국대학 병리학 조교수가 되었고, 이때부터 활발한 논문활동과 더불어 한국의 질병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몇 년 후 윤일선 교수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교육 그리고 국적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하여 사립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우리말로 강의하면서, 연구에 몰두하여 세브란스의전 기초의학교실의 터전을 닦았다. 여기서 많은 제자를 길러 냈을 뿐 아니라, 세브란스병리의 연구업적이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의학부와 경쟁할 만 한 수준에 도달하게 하였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 의학자들만 모여 조선의사협회를 결성하고, 우리말로 발간하는 최초의 의학잡지인 ‘조선의보’의 초대 편집장으로 서울에 있던 한국인 의학자들과의 친목을 통해 이 후 우리나라 학계의 틀을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저명한 학술지 Cancer Research에 ‘한국인 종양의 통계적 조사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서 해방된 우리나라의 학문을 처음으로 세계 문헌에 등록하였다. 이와 더불어 미군정청이 들어서면서 그는 경성제대 의학부의 인계 책임을 맡았고, 경성제대 의학부가 경성대학 의학부로 개편되면서 의학부장에 취임했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발족되면서 그는 병리학 교수로 부임하는 한편, 서울대학교의 초대 대학원장이 되어 인문학, 사회과학, 이공학 박사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배출하였다.

1946년 10월에는 대한병리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이 되었고, 1948년에는 대한의학협회(지금의 대한의사협회)회장을 맡아 봉사했다.

윤일선 교수는 1954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56년에는 서울대학교 제6대 총장으로 선출되어 5년 3개월간 최장수 총장으로 직무를 수행하였다.

총장 재임시에도 의과대학 학생 강의를 소흘히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 때 부산에 피난가서도 논문을 심사하여 학위를 수여할 정도로 학교일에 충했다.

윤일선 교수는 1987년 6월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요약컨대, 윤일선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병리학 연구와 교육을 통해 한국 병리학의 탄생과 발전을 주도했다. 또 조선의사협회 등 의사단체 결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최초의 우리말 학술지의 창간에도 크게 기여했다. 해방 후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서울대학교 출범 과정에서 경성대학 의학부장으로 제 역할을 다했고, 서울대학교 발족 후에는 대학원장과 총장으로서 초창기 서울대학교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인격이 결여된 자는 학문을 할 자격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일생 동안 학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근대의학을 우리나라에 정착시킨 대학자요, 학식과 인격을 갖춘 대학행정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