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 성 관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왼쪽 옆구리가 계속 아파요.”
진료실에 들어선 60대 남자는 지친 얼굴이었다.
“식사는 잘하시나요?”
“잘 먹습니다.”
“대변 보는 건 어때요?”
“괜찮아요.”
“소변은 어때요?”
“평소와 같습니다.”
“최근에 체중 변화는요?”
“5kg쯤 빠진 것 같습니다.”
“담배는 피우세요?”
“네. 40년 넘었죠.”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지고, 진찰이 시작됐다. 배를 만지고 눌렀다. 통증은 심하지 않았고, 아픈 부위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혈액 검사는 물론이고, 위대장에 내시경, 거기다 초음파까지 했는데 결과는 아무 이상 없다고 했다.
의사로서 다음 단계는 명확하다.
60대 남자, 흡연 경력 40년, 좌측 옆구리 통증, 5kg 이상의 체중 감소.
혈액 검사 및 위대장 내시경 및 복부 초음파 정상.
췌장 및 부신, 그리고 신장 및 요로쪽 암 등을 감별해야 한다. 복부 초음파를 하긴 했으나, 초음파의 특성상 정확성이 떨어지기에 복부 및 골반 조영 CT를 촬영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인간적 설득이었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하고 “이상 없다”는 말을 들은 환자에게 또 다른 검사를 권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복부 장기의 구조와 초음파의 한계, 복부 CT의 필요성에 대해 차근히 설명했지만, 환자의 표정에는 신뢰보다는 피로와 의심이 어려 있었다.
‘또 검사를 해야 해?’
‘괜히 돈 벌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시간도 없는데, 귀찮은데…’
그의 마음이 읽혔다.
나는 컴퓨터 화면을 환자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럼 인공지능의 의견도 들어볼까요?”
Chat CPT에게 이렇게 물었다.
“60대 남자, 흡연자, 좌측 옆구리 통증, 5kg 체중 감소, 혈액 검사 및 위대장 내시경 및 복부 초음파 정상. 다음으로 해야 할 검사는?”
화면에는 곧 이런 답이 떴다.
“1. 조영증강 복부 및 골반 CT
가장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할 검사입니다.
초음파로는 잘 보이지 않는 췌장미부, 후복막, 요관, 신장 병변등을 평가 가능
특히 ‘흡연+체중 감소+옆구리 통증’은 신장암 혹은 요로암의 전형적 조합이므로 반드시 CT로 평가해야 함.”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세요. 인공지능도 저와 같은 판단을 내립니다. 의사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할 겁니다. 다만 암을 찾는다기보다는 암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검사를 해 봅시다.”
그제야 환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2015년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꺾었을 때, 사람들은 인간이 패배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확장’의 시작이었다. 기계는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의사에게게도 인공지능은 경쟁자나 대체자가 아니다. 의사에게는 더 정확한 판단을 도와주고 환자에게는 신뢰를 줄 수 있는 동반자다.
우리는 지금 ‘불신의 시대’와 ‘인공지능의 시대’를 동시에 살고 있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를 의심하고, 인간은 인공지능을 경계하며 두려워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의사를 돕고, 의사는 환자를 돕는다. 그리고 이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신뢰다.
이 기술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기술이 아니라 인식의 변화다. 의사의 적은 환자가 아니고, 인간의 적은 인공지능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적은 불신이다. 의사, 환자, 인공 지능은 모두 같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