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전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이 의학을 한국에 알리고자 하는 시도는 교과서를 한글로 번역하여 교육을 하고, 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전 세계는 영어를 공식 언어로 움직이고 있으며, 학문의 정보 교류는 모두 영어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에게 의학을 가르치고, 환자와 보호자를 이해시키며, 의료정책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전문지식을 설명하는 것은 모두 우리말로 하여야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의학의 개념과 용어를 우리 것으로 정착시키고 표준화하는데 앞장서 의학용어집을 발간하고 있다. 1977년에 의학용어 1집이 발간된 후, 현재 5번의 개정을 진행하여 왔다.

의학용어의 불확실함을 개선하고, 쉬운 우리말을 활용한 의학용어집 4판(2001년 발간)이 발간된 지 15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토박이 우리말 의학용어와 한자투 우리말 용어에 대한 갑론을박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쉬운 우리말 용어를 쓰자는 대원칙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 익숙하고 많이 써온 용어를 바꾸는 일에 갈등과 저항을 하였다. 이를 해소하고자 의학용어집 5집 (2009년 발간)에서 한글용어와 기존의 한자용어를 병기하였으나, 오히려 공식용어로 무엇을 쓸 건인가에 대한 질의만 많아졌으며, 더 혼란스럽다는 비판도 거세었다. 이로 인해 오히려 한글의학용어를 외면하고, 영어용어만 사용하는 추세가 증가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각 학회가 국제화를 위해 영문잡지를 발간함에 따라, 의학계에서 한글의학용어를 몰라도 된다는 분위기까지도 있었다.

의학계가 새로운 한글용어가 도입되는 과정의 파격과 급박함에 대한 갈등으로, 끝없는 토론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정부기관에서는 두 가지 방향의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하나는 2001년에 발간된 의학용어집을 완전히 배재한 한국표준질병분류표 KCD6의 고시 시행(통계청)이었고, 하나는 2009년에 발표된 COSTOM 용어(구 보건복지정보개발원 주관)이다. 의학용어집 4판의 의료계 도입이라는 큰 회오리 속에서 이의 정착과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학계 용어전문가들의 갈등이 결국 한국질병분류표는 3판을 근거로 한 한문투용어로, COSTOM 용어는 의학계 갈등으로 인해 미처 진행하지 못한 여러 관련 질병에 쓰여지는 복합용어를 자체적으로 작업을 하여 의협용어집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용어들까지 다수 포함된 표준보건용어로 발표하게 되었다. 이 용어가 표준용어라는 이름을 달고 발표되었고, 대한의학회 의학용어 홈페이지에서도 의협의 의학용어와 나란히 표준용어로 표기된 채 오래도록 올라와 있어서, 이것이 수정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은 의협용어보다 더 공인된 용어로 착각하기도 하였다.

지난 회기에 의협 용어위원회는, 여러 개의 한글용어가 병기되어 있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일반인에게도 통용되는 장기이름과 같은 한글용어는 대표용어로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여러 한글의학용어의 혼란을 줄이고자, 최신 의협 한글용어집의 용어를 표준용어로 2014년 9월에 고시하였다. 2015년 보건의 날 행사에서 보건복지부 정책국, 의협, 보건복지정보개발원, 심평원의 의학용어 관련자들이 모인 것을 계기로 용어관련 연구모임이 결성되어 용어의 혼란이 의료계를 위해 결코 좋지 않음에 대해 토의하였다. 의협의 의학용어가 표준용어로 고시된 것을 계기로, 보건복지정보개발원의 costom 용어, 심평원의 여러 급여관련 용어들이 연관성을 가지고 표준화되어야 함에 대해 논의하고, 향후 질병분류표의 용어도 정비할 필요에 대해 토의하였다. 메르스 사태로 인하여, 현재 이 모임을 주관하던 과장이 타부서로 전보된 상태이나, 의료계와 보건정책을 위해서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일이다.

국제화시대에 국내에서 발간되는 잡지도 모두 영어인데 왜 한글용어가 필요하고, 잘 정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질병관리본부가 구축한 국립의과학지식센터는 미국국립보건원(NIH) 산하의 국립의학도서관이 운용하는 PubMed Central(PMC)과 같은 서비스를 국내자료로 구축하여 서비스 하고자 한다. 즉 PMC Korea를 구축하여 국내의 연구자들은 물론 세계로 국내 의학연구결과물인 논문 원문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학회지가 대부분 영문으로만 발간되는 것에 대해서 단순히 국제화 선진화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우수한 의학연구결과들의 한글원문이 없고 한글로 검색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알아야 한다. 잘못하면 의학계외의 일반인이나 정책결정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의료분야 논문이 자칫하여 한의학이나 간호학이나 물리치료분야 등의 관련 방계분야의 논문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학회는 영여잡지를 발간하더라고 (프랑스에서 하는 것과 같이) 초록이라도 반드시 한글을 병행하여 싣도록 함으로서 국내의 우수한 의학연구자료들이 쉽게 한글로 검색되어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많은 건강관련 자료나 의학적 글쓰기 분야에서 의사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의학용어의 혼란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글의학용어의 표준화와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현재 고시예정된 KCD-7의 용어적 오류를 수정하기에 이미 시간이 부족하다면, 5년 주기로 개정되고, 향후 ICD-11을 기준으로 개정된 KCD_8에는 반드시 의협 의학용어집에 있는 한글용어들이 반영되어 의료계 내에 혼란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각 학회의 용어개정 등의 작업도 의협의 의학용어 개정 원칙을 따라줄 필요가 있다. 많은 질병명과 이에 따른 증상을 표현하려면 현재 용어를 기준으로 어떻게 복합용어를 만들 것인가의 원칙이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분야의 지식이 대두됨에 따라 발생한 신기술용어에 대한 한글의학용어도 필요하다. 우리 의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가 새로이 발견한 기술이나 개념을 정의할 우리말 용어와 이에 대응하는 영어용어도 보급해야 한다. 이러한 것을 골자로 하는 의학용어집 6판의 작업을 2017년 말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러한 진행과 함께 필요한 권장용어들을 신중히 정하여 관련된 정부부처와 함께 대한민국 용어표준화를 이루는 것이 의협 용어위원회의 나아길 길이다.